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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백세 일기(김형석 - 김영사)

백세에 책을 내는 건강함과 감사함을 쓴 체험기.

 

머리말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은 정신과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리라는 의욕을 가졌다. 희망이 없었던 내 유소년기의 건강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신체는 노쇄해져도 정신적 성장은 오래 지속될 것이며 인간적 수양과 덕성은 생존해 있는 동안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은 왜 하는가. 좀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100명의 사람이 100가지 일을 하는 것 같아도 그 목적은 다 같다. 나로 인해 좀더 많은 사람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노력이다. 그러니까 일하기 위해 배우고, 배움이 더 값있는 일을 가능케 하리라는 삶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1부.

조반의 내용은 지난 50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다. 우유 한 잔, 계란 하나, 토스트 반 조각, 호박죽 조금, 과일, 커피 반 잔이면 된다. 90세를 넘기면서부턴 그 양이 조금씩 줄고 있으나 빼놓지는 않는다.

 

내 나이 100세. 감회가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겨울이 지나가면 아침과 저녁에 또 산책을 하게 될 것이다. 산과 자연은 태양이 떠오를 때와 서산으로 넘어갈 때 가장 아름답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20대 후반에 탈북해 서울에 올때는 어떤 희망의 약속이 있었다. 100세에 내 삶의 석양이 찾아들 때가 왔다. 아침보다 더 장엄한 빛을 발하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곧 99세가 되는 생일을 맞게 된다. 여러 분이 내게 하는 인사가 모두 비슷하다. '좀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라는 마음들이다. 왜 그런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껴주는 동안 그분들 옆에 머무를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 

 

인생은 과거를 기념하기 위한 골동품이 아니다.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출발이어야 한다. 밀알이 더 많은 열매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듯이.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주어지는 일을 계속 해야겠다. 열심히 벌어서  내 힘으로 살아가 남는 재산이 생기면 필요한 곳에 주고 가려한다. 재산은 소유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값있게 쓰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참다운 의미의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 많이 주는 사람이다. 

 

2부.

기다리고 있던 병중의 아내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말을 못하는 아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훌륭하게 잘되었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그럴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열 네살에 내가 올린 기도다. "하느님, 저에게 건강을 주셔서 중학교에도 가고 오래 살게 해주신다면 제가 저를 위해서는 일하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3부.

생일은 삶의 기간과 함께 끝나는 것일까. 기일은 쉬 잊히지 않는다. 내 모친의 경우도 그렇다. 생일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세상 떠난 날이 생생히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더 긴세월이 지나면 사회와 역사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럼들은 생일과 기일을 함께 기억해준다. 생일을 지니고 살다가 기일을 남기는 사람도 의미 있는 생애를 살았겠지만, 두 날 다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사람은 감사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지금은 얼마나 오래 사는 것이 좋으냐고 누가 물으면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라고 말한다. 

 

여러 해 전 지방 강연 때 한 30대 남성이 학비를 도와주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고 인사를 했다. "장학금을 준 일이 없을 텐데요"하고 반문했다. 자기가 고생하고 있을 때 의사B가 장학금을 주면서 "이 돈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고 대학다닐  때 김형석 선생이 도와준 것이다. 너도 이다음에 사정이 허락하면 이 돈을 가난한 학생에게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80여 년 전 중학생 때 나를 사랑해준 마우리 선교사가 떠올랐다. "이것은 예수께서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 갚는 것이 아니니까 네게 가난한 제자가 생기면 예수님을 대신해 주면 된다."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남는다.

 

성경을 읽어보면 포도밭 주인이 아침 9시, 낮 12시, 저녁 5시에 와서 일해준 품꾼들에게 다 같은 품삯을 주었다는 비유가 있다. 영국의 존 러스킨은 그 글을 읽고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 갈등과 모순을 해결하는 길은 정의로운 노사 관계보다 사랑이 있는 질서가 더 중하다는 저서<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를 남겼다.

그 책을 읽은 인도의 간디도 그것이 인간 본연의 공존 가치이며 희망이라고 뒤따랐다. 정의를 완성시키는 길은 사랑이다 인간애가 정의보다 귀중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90세를 넘기면서 가장 힘든 것은 늙는다는 생각이 아니다. 찾아드는 고독감이다. '나 혼자 남겨두고 다 떠나가는구나' 하는 공허함이다. 자녀도 다 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친구들도 소식 없이 떠나버린다. 

종교적 신앙에는 참된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무엇이 신앙적 권위인가. 목사들은 설교도 잘하고 신학자는 좋은 학설을 펴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권위를 터득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참된 신앙적 권위는 사랑을 실천할 때 생긴다. 이태석 신부 생각이 났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 자처하면서 남에게 그런 희생적 사랑을 보여주거나 나누어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은 많은 짐을 갖지 않는다. 높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거운 것들은 산 아래 남겨두는 법이다. 정신적 가치와 인격의 숭고함을 위해서는 소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유는 베풀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즐기기 위해 갖는 것이 아니다 

 

4부.

젊었을 때의 우정과 이상은 물거품같이 사라져버렸다. 어긋난 애국심이 우정을 배반했다는 고통이다. 그래도 지금 살아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사라져도 우정은 영원한 것 같은 마음이다. 100세 나이가 가르쳐준 인간애의 작은 별빛이다. 

 

맺음말

최근에는 세대 간의 간격과 갈등까지 합세하는 현상이다. 청년의 '지성을 갖춘 용기'는 소중하다. 장년의 '가치관이 있는 신념'은 필수적이다. 노년의 '경험에서 얻는 지혜'도 있어야 한다. 이 3세대가 공존할 때 우리는 행복해지며 사회는 안정된 성장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