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강. 암흑시대의 등불2 - 아우구스띠누스
암흑: 중세시대
빛이 없던 시대는 없었다. 빛의 기준이 동일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세이후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그와 맞물려서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한다.
계몽: Enlighten
물리적 빛이 아니라 철학적 의미다. 이성의 빛.
이성을 통해서 인간의 판단의 기준이 된다.
중세시대에는 계시의 빛이었다.
계시의 빛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계몽주의 사람들의 이성의 빛으로는 중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중세를 만들어낸 힘이 계몽주의를 만들어 냈다.
중세시대, 계몽주의, 현재까지 빛의 역할을 했던 신학자가 있었다.
어거스틴.
종교개혁 때도 그의 사상을 가지고 중세를 비판하는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신이 살아있고 역사를 움직인다면 신의 부재인 악은 존재하면 안되는 것이 아닌가.
빛이 있는 곳에 악이 없어져야 하지 않나.
그런데 현실은 선과 악이 함께 있다. 신과 악마가 함께 있다.
어거스틴의 사상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어거스틴은 이런 자신의 한계(죄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애썼는가.
악은 선의 결핍이라고 한다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해석
현실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우리는 느낀다.
죄를 세 가지 단계로 다뤘다.
포제 논 페까레(타락이전) :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창조주의 존재와 대립되는 것이 가능성으로 있다는 것이다. - 혼돈(무질서)이라고 한다.
이 세상이 창조되는 순간 창조주와 창조주 아닌 것이 나눠진다.(중요)
신이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면 선과 악의 문제가 없다.
신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완전하고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선과 악을 의미하지 않는다.
선과 악을 넘어서있다.
그런데 악이 신이 만들어 낸게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지면서 절대적인 신과 유한한 세상이 공존하게 된거다.
악은 이미 그 안에 불안전함과 결핍을 가지고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가 아니라는 특성이 있다.
악이 그냥 들어와 있는 게 아니고 죄를 짓지 않을 가능성(포제 논 페까레: 타락이전)이 있다. - 이 세상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가치중립.
인간이 결단하고 행동하는 순간 선과 악이 나눠진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도록 정해진 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은 따먹을 것을 알고 계신다.
그 선택은 인간한테 있다. 악은 가능성이다.
이 세상이 만들어 지는 순간, 절대적인 신과 절대적인 신이 아닌 것들이 함께 있다.
신과 다르다는 거리, 그 속에 악이라는 가능성이 있다.
그 거리를 그대로 유지하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데 인간이 그 거리를 좁히려고 한다.
신처럼 되려고 한다.
인간이 선택(자유의지)을 통해서 그 가능성으로만 있던 악을 현실 속으로 끄집어 낸 것이다.
이미 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악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타락한 상태다(논 포제 논 페까레: 타락).
반드시 죄를 짓는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악이 바깥에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인간 안으로 들어왔다.
인간이 아무리 선한 행동을 하려고 해도 악이 나간다.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바울).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한 이후에는 죄를 지울 수 없게 된다(논 포제 페까레: 구원).
악을 행하려고 해도 행하지 못하게 된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현실을 해석할 때 결핍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하나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을 ‘악에 대한 세가지 단계’에 대한 해석으로 설명하고 있다.
악이 선의 결핍일지라도 선이 있는 현실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이 완전히 구원받는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선과 악이 갈등한다.<신의도성>
역사는 진정한 선(빛)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선과 악, 빛과 어둠 사이의 갈등이 계속된다.
왜냐하면 이미 악이 선의 결핍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서 현실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악은 없어지지 않고 진정한 구원의 시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만 선과 악의 갈등이 사라지고 진정한 선이 나타날 때 악은 영원히 사라진다.
악이 선의 결핍이라는 어거스틴의 해석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지금이 아니다.
지금은 타락한 현실이다.
선과 악이 함께 움직인다.
하나님의 왕국과 세상의 왕국이 지금 우리의 역사를 움직인다.
이 두 영역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갈등이 이미 창조를 통해서, 시간과 영원이 만나면 창조가 이루어진다.
창조 전에는 시간과 영원이 만나지 않는다. 영원만 있다.
창조 이후에는 선과 악이 갈등을 일으킨다.
그 갈등이 가인과 아벨로 이어진다.
가인의 후손은 선민, 아벨의 후손은 이방인.
이 둘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예수님 이후에 더 심해져 교회와 국가 사이에 갈등한다.
예수가 재림하면 모든 갈등이 사라지는 신성로마제국,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다.

서고트족의 침입으로 410년 서로마의 멸망후 413년에 신의도성(하나님의도성)을 저술하였다.
<고대 철학의 흐름 : 1~9강 요약>
헬레니즘(BC323 ~ AD30) 1)에피쿠로스 학파 2)스토아 학파 | 인간이 철학적인 사고를 시작하고 기록한 시점 1)→베이컨 경험주의 2)→데카르트 합리주의 3)이분법적사고→헤겔 변증법 |
세상의 물질과 본질에 관심, 철학의 시작.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 자연철학자: 탈레스, 피타고라스, 데모크리토스 |
본질을 찾지 못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상대주의, 회의주의, 부정적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철학의 대상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옴. |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 |
인간의 감각도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이다. 긍정적인 길을 추구함. 내가 이성적으로 느끼는 가장 확실한 것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이것이 철학의 출발점이 되어야한다. 진리는 누가 전해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대면하여 경험하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의 생활태도는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룬다 →(두 줄기)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
소크라테스 영향 : 이데아론, 철인정치론 소크라테스 부정 : 귀납법으로 보편적 정의 어렵다. 이데아, 전체, 무의식, 연역적, 관념론 | 플라톤 *현대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다.(노드 알프레드) |
보이는세계, 개체, 의식, 귀납적, 유물론 | 아리스토텔레스 *현대 자기계발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각주다 |
신플라톤주의. 플라톤의 입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조화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학파는 현실주의로 보이는 것만 인정. 물질세계는 변한는 것, 유한한 것. 유한하지 않다. 영원한 것은 영적인 것이고 유일한 존재다. 신이 물질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파생된 것이다. 유출설. 악은 나쁜 것이 아니라 선의 결핍이다. | 플로티누스 |
그런데 왜 현실 속에서 선과 악은 갈등하는가 유출설. 악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 플로티누스를 받아들였지만 결정적인 건... 창조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기로 결심한 신의 자유의지의 결과다. 무(無)로부터의 창조(헬레니즘과 결별)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현실을 해석할 때 결핍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하나의 힘(죄의 3단계)으로 움직이고 있다. | 아우구스띠누스 17세기 데카르트에 영향을 줌. 존재의 근원으로서 생각을 제시하였다. *현대신학은 아우구스띠누스의 각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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