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두 줄기 : 유명론과 실재론 - 안셀무스>
중세의 관심은
1) 보편(신)
2) 신앙 - 이성
3) 신존재 증명
어거스틴(플라톤)의 ‘이데아’를 ‘신’이 대신한다.
기독교의 각성으로 산속 수도원이 세워지고(실천적 금욕) 이후 학문(스콜라)으로 변화함.
--> 스콜라라는 학문적 부흥운동으로 인해 중세 신학이 발전했으며 그 계기는 아라비아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현실주의)이다.
중세는 고대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중적 대립이 그대로 존재한다.
어거스틴에서 겨우 통합됐었는데 다시 나타난다
그 결정적 모습이 유명론(노미널리즘)과 실재론(리얼리즘)이다.
중세 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을 사고하는 게 아니라 영원한 존재, 보편적인 것을 생각한다.
그 보편적인 것이 머릿속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
밖에 있는 대상은 너무 많다.
머릿속에 있는 대상은 하나다.
세상의 나무는 많다.
머릿속 나무는 하나다.
그 관계는 어느 것이 진짜인가(중요한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대립한다.
플라톤 관점의 [실재론]
머릿속의 보편적인 것, 신이 그 관념 속에 있다.
현실에서는 그 속에 신이 실재한다. 범신론과는 다르다(이단).
옴리 포텐스(신적인 전능)이며 옴리 프레즌스(신적인 편재)다.
보이지 않는 것이 먼저다. 이 전통을 따르는 사람이 안셀무스다.
정신 속에 보편이 있는가?
현실 속에 보편이 있는가? 의 대립
중세의 흐름:
실재론 --> 온건한실재론 --> 유명론(14세기)
(안셀무스) (아퀴나스) (옥캄)
믿음과 신앙.
믿음을 위해서 이성이 존재한다.
믿기 위해 아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 믿는다.
알려면 믿음을 가져야 한다.
<중세의 두 줄기 : 유명론과 실재론 - 아퀴나스>
신의 존재를 설명할 때
안셀무스는
1. 선으로 - 절대적인 선은 인식하긴 힘들지만 상대적인 개념으로 비교하며 알 수 있다.
(누구보다 선하다, 악하다, 크다, 작다...)
우리가 선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가장 선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 선을 통한 신의 증명
그 안에서 유명론과 실재론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보편(보이지 않는 관념의 실재)이 먼저냐, 개체(현실세계)가 먼저냐
모든 인간은 죽는다. 개똥이, 소똥이는 인간이다. 개똥이는 죽는다 소똥이는 죽는다 - 플라톤 - 실재론: 머릿속에 빨갛다는 개념이 이미 형성되어 있음(이데아) |
개똥이는 죽는다 소똥이는 죽는다 개똥이, 소똥이는 인간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 아리스토텔레스 - 유명론: 빨간 사물을 매일 보면서(경험) 머릿속에 빨갛다는 개념 형성(보이는 현실세계) |
고대부터 모든 철학에는 이 두 줄기가 대립으로 존재한다
2. 존재로 - 어떤 것으로부터, 또는 스스로
모든 것은 존재하는 원인이 있다 ---> 마지막에는 존재의 근원이 남는다(=> 신)
3. 단계(존재의 단계)
바위, 돌 --> 식물 --> 동물 --> 인간 --> 최상의 존재(=> 신)
안셀무스는 이렇게 신의 존재를 설명했으나 그의 입장이 극단으로 흐른다.
왜냐면 실재론은 현실 개체를 설명할 수 없고, 유명론은 영원, 불변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
토마스 아퀴나스 - 실재론에서 출발해 유명론을 조합(온건한 실재론자, 중세 중기)
둘 다 영원한 진리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보이는 현실 속에 보편적인 이데아의 세계가 내재해 있다.(자연신학-은총이 역사한다)
이성은 스스로 계시에 다가갈 수 없다. 은총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이 둘을 조화하려는 움직임의 시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이 라틴어로 번역됨(11세기 이후 실재론-> 유명론 과도기)
서방 기독교의 두 파: 도미니칸(아리스토텔레스 전통), 프란시스칸(안셀무스~플라톤 전통)
현실적, 논리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 (5가지)
1. 운동을 통한 증명
보이는 현실 속에 보이지 않는 신이 존재한다.
운동의 최초의 근원은 신이다.
구원론에서 보면
-안셀무스의 입장은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만이 인간을 구원한다(실재론)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과 회계로 구원을 완성한다. [신인 협력설]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노력은 별개다, 인간은 끊임없이 노력해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유명론, 공로주의)
옥캄은 극단의 유명론으로 갔다.
<중세의 두 줄기 : 유명론과 실재론 - 옥캄>
아퀴나스 - 현실적, 논리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 (5가지)
2. 작용인 - 모든 결과의 최초의 원인은 신이다.
3. 필연성 - 모든 존재를 있도록 하는 것. 모든 것은 무엇으로부터 존재한다.
그 존재하는 근원은 스스로 있는 것이다. 신이다.
4. 완전성 -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불완전을 비교하는 근원, 그 완전성이 신이다.
5. 우주 질서 - 우주 안의 법칙의 근원이 신이다.
아퀴나스는 5가지로 신을 증명하면서 또 현실세계와 영원한 존재를 비교하면서 온건한 실재론을 조화시키려 했다.
옥캄은 아퀴나스를 비판했다.
왜냐하면, 존재가 존재의 근원이 될 수 없다. 영원한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유한 속에 무한이 들어갈 수 없다.
(안셀무스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고 보이는 세계는 그림자다.)
(아퀴나스 두 세계를 연결시키려 했다.)
옥캄은 영원한 세계가 있더라도 연결시키면 안 된다. 진리는 두 가지다. 이중적이다.
서로 다른 차원이다. 이성적 진리로 영원을 알 수 없고 영원으로 이성을 알 수 없다.
보편적인 것은 이름뿐이다(유명론).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이 때는 14세기 르네상스 시대. 중세가 막을 내리며 변화하는 시기.
11세기부터 200년 동안 십자군 전쟁
이를 통해 이탈리아 상업이 번성하여
상인들이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고 정치적 독립을 한다.
교회의 힘이 약화, 봉건제도가 무너진다.
시민계급이 형성되어 학자와 예술가를 지원하는데 그들은 이슬람의 문화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과학에 깨인 사람들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성) 중심의 사고, 인문주의, 휴머니즘으로 꽃 피운다.
고대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사상을 가져와 헬레니즘을 부활시키려 한다.
르네상스!!
옥캄은 인간의 이성과 현실에 관심을 두는 유명론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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